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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21일 Euronews에 따르면, 약 2000년 전 베수비오(Monte Vesuvio) 화산 폭발로 파괴된 고대 로마 도시 외곽의 별장에서 발굴하는 과정에서 ‘부자’와 그의 ‘남성 노예’로 추측되는 뼈대가 발견 됐다고 밝혔다. 폼페이(Pompeii) 당국은 베수비오 산에서 화산재가 떨어진 후, 다음 날 발생한 강력한 폭발로 인해 두 사람이 사망한 것이라 말했다.

이를 알 수 있었던 것은 1800년대에 개척된 유적 발굴 기법 덕분이다.  화산재 속에서 시신이 부패하며 생긴 공간과, 화산에서 쏟아진 부석에 액상석고를 붓는 형식의 이 기법은 희생자들의 형태와 위치를 보여줄 뿐 아니라 유골을 ‘동상처럼’ 만들어 보존할 수 있다.

해당 유적이 발굴 된 폼페이(Pompeii) 는 고대 로마에서 번성했던 도시로서, 당시 로마 상류층의 휴양 도시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서기 79년, 베수비오(Monte Vesuvio) 화산의 폭발로 인해 단 하루 만에 도시 전체가 화산재로 덮여 버리면서 수 많은 희생자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15세기까지 이 날은 잊혀졌으나, 1559년 지역 수로 공사를 하는 도중 유적이 발견 되면서 본격적으로 발굴이 시작 되었다.

한편, 두 남성을 통해 당시 계급 사회를 알 수 있다. 당시 발견 된 젊은 남성의 유골은 척추 뼈의 상태가 좋지 않아 중노동을 하던 노예였을 것으로 추측했다. 뿐만 아니라, 전문가들은 발굴 작업에서 사람들의 형태를 통해 가설을 세웠다. 귀족들의 경우 한 평생 편안하게 살아 화산재에서 매우 고통스러워 했고, 반면 신분계급이 낮은 사람의 경우 오히려 화산재의 고통에서 귀족에 비해 편안한 자세를 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또한 경기장과 같은 유적지 내 좌석에서도 신분에 따라 위치가 달라졌음을 보인다.

이렇듯 유적지는 당시 그 시대의 생활 방식과 문화, 사회상 등 많은 것을 알기 위한 충분한 자료가 된다. 폼페이 유적은 역사적으로도 가치가 뛰어나기에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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