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트, 해저, 수중, 난파선, 침몰
출처: Pixabay

2024년 9월 30일 스위스(Switzerland) 언론사 블루뉴스(Blue News)에 따르면, 에스토니아(Estonia)와 스웨덴(Sweden)에서 에스토니아 페리(perry) 침몰참사 30주년을 추모하는 행사를 열었다. 이 사고는 20세기 최악의 해상 재해 중 하나이다.

1994년 9월 23일, 에스토니아호가 발트해(Baltic Sea)에서 폭풍우로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에스토니아호는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Tallinn)에서 스웨덴 스톡홀름(Stockholm)을 잇는 선박이었다. 사고 당시 선박은 탈린-스톡홀름 노선의 절반쯤 왔을 때 한쪽으로 기울었으며, 10분 후 갑판 3피트(ft, 약 91.44cm)까지 물이 차올랐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 바다로 뛰어들었으나, 구조활동은 구조신호 50분 후에 시작되었다. 결국 선객 989명 중 137명이 생존했으며, 95구의 시신이 회수되었다. 희생자 중 대다수는 스웨덴인(502)과 에스토니아인(280)이었다. 영국(United Kingdom)과 네덜란드(Netherlands), 핀란드(Finland) 등 총 17개국의 국민도 목숨을 잃었다.(출처: eesti)

사건 이후 에스토니아, 핀란드, 스웨덴이 공동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선수 문의 잠금 장치가 파도의 압력으로 인해 고장났고, 문이 선박과 분리되어 내부 적재 램프가 열려 차량 갑판이 발트해에 노출되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내재된 설계 결함의 문제였던 것이다. 에스토니아호 참사를 계기로, 1999년부터 여객선의 모든 승무원은 의무적으로 위기 관리 및 행동 훈련을 받기 시작했다. 또한 수동 작동이었던 위성조난신호기*(Emergency Position Indicating Radio Beacon, EPIRB)가 자동 작동으로 바뀌었으며, 갑판 침수 및 안정성 규정도 도입되었다.

스톡홀름에 위치한 에스토니아 기념관 추모식에서 스웨덴의 칼 16세 구스타프(Carl XVI Gustaf) 국왕과 부인 실비아(Silvia) 여왕은 “희생자들에게 빚을 지고 있으며, 참사를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에스토니아 탈린에서는 “에스토니아 – 배의 이야기” 전시회와 사망자 유가족을 대표하는 협회인 메멘토 마레(Memento Mare)가 주관한 추모식과 화환 헌화식이 진행되었다.

안타깝게도 규칙과 절차는 주요 사건이나 비극이 일어난 후에야 바뀐다. 타이타닉(Titanic)과 헤럴드 오브 프리 엔터프라이즈**(Herald of Free Enterprise) 참사는 각각 국제해상인명안전협약***(Safety of Life at Sea, SOLAS)과 국제안전관리규약****(International Safety Management Code, ISM Code) 규정의 도입에 촉매 역할을 했다.(출처: nautilusint) 지난 과오를 바탕으로 앞으로는 에스토니아 참사와 같은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관련 기사의 자세한 내용은 다음의 기사 확인 링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기사 확인

*위성조난신호기: 선박이나 항공기가 조난상태에 있고, 수신시설도 이용할 수 없음을 표시하는 것이다. 수색과 구조작업 시 생존자의 위치 결정을 용이하게 하도록 무선 표지신호를 발신하는 무선설비이다.(출처: 해양수산 용어사전)

**헤럴드 오브 프리 엔터프라이즈: 1987년 3월 6일 밤 벨기에(Belgian) 제브뤼헤(Zeebrugge) 항구를 출발한 직후 전복하여 승객과 승무원 193명이 사망한 롤온/롤오프(roll-on/roll-off, RORO) 페리 참사이다.(출처: 위키백과)

***국제해상인명안전협약: 선박의 구조와 설비 등에 대해서 국제적으로 통일된 원칙과 규칙을 설정해 해상에서의 인명 안전을 증진하기 위한 목적으로 체결된 협약이다.(출처: 21세기 정치학대사전)

****국제안전관리규약: 해운선사 및 선박의 안전관리 조직ㆍ절차 등에 대한 국제적 통일기준을 명시한 규약이다.(출처: 선박항해용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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