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13일 AP뉴스에 따르면, 1921년 털사 인종 대학살'(Tulsa Race Massacre) 희생자의 후손들이 희생자 유골을 식별하기 위한 DNA를 제공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희생자의 유골 식별 및 DNA 데이터화 등의 작업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법과학수사연구소는 당초 DNA 기증 작업에 여러 법적 절차가 존재하는 만큼 기증 작업에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작년에 100주기를 맞아 조속한 유골 식별 및 조사에 대한 요청이 있었고, 희생자 유가족이 기증을 수락했다. 털사 인종 학살이 벌어진 장소 인근에 위치한 솔트레이크시티(Salt Lake City) 비영리 재단은 1년 전 지역 공동 묘지에서 옮겨진 14구의 유해를 추가로 조사하고 있으며, 그 중 최소 2구는 신원 확인을 할 수 있는 충분한 DNA가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시간이 오래 지났기 때문에 정확한 신원 확인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밝혔다.
털사 대학살은 1921년 5월 31일부터 이틀간 오클라호마주(State of Oklahoma) 털사시 그린우드(Greenwood)에서 백인들이 최대 300명의 흑인(2001년 오클라호마주 조사위원회 추정치)을 무참히 살해한 사건이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인종 폭력 사건으로 불리는 털사 인종 대학살은 오는 31일(현지시간)로 101주기를 맞는다. 미국 언론들은 작년 털사 대학살 100주기를 앞두고, 역사적 의미와 현재의 쟁점 등을 진단하는 보도를 일제히 내보냈다. 그린우드는 당시 블랙 월스트리트(Black Wall Street)로 불릴 정도로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흑인 동네였으나, 이 사건으로 폐허가 됐다.
학살극은 당시 그린우드의 19살 흑인 구두닦이 청년 딕 롤런드(Dick Rowland)가 흔들리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17살 백인 소녀 세라 페이지(Saera Page)의 몸에 손이 닿은 사건에서 시작됐다. 폭행 혐의로 기소된 롤런드는 무죄를 주장했으나 백인들은 롤런드에 보복을 하기 위해 시내에 모였고, 롤런드를 보호하려는 흑인과 총격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백인들이 숨졌다. 이에 분노한 백인 우월주의자들은 그린우드를 급습해 총격과 약탈 및 방화를 벌였고, 털사 경찰은 백인 폭도들에게 무기를 제공하는 등 흑인들에 대한 학살을 방치했다. 블랙 월스트리트의 1천200여 개 건물은 하룻밤 사이에 잿더미로 변했고, 수천 명이 집을 잃고 그린우드를 등졌다.
하지만 당시 언론들은 이 사건을 백인과 흑인간 무장 충돌로 묘사했다. 오클라호마주 대배심은 관련 재판에서 무장한 흑인들 때문에 빚어진 사건으로 규정한 뒤 백인들은 아무 잘못이 없다고 결론내렸다. 이에 따라 털사 대학살은 1997년 오클라호마주 조사위원회가 구성돼 사건의 진상을 다시 파악하기 전까지는 ‘털사 인종 폭동'(Tulsa Race Riot)으로 불렸다. (자료출처: 연합뉴스)
한편 털사 학살에서 살아남아 현재까지 생존해있는 피해자는 비올라 플레처(107)와 휴스 밴엘리스(100) 남매, 레시 베닝필드 랜들(106) 3명에 불과하다. 이들은 지난해 오클라호마주와 털사 카운티, 털사시를 상대로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으며, 지난 19일 미국 의회에 출석해 털사 학살을 증언했다.
털사 학살 희생자 후손들의 DNA가 제공됨에 따라 희생자 유골 식별 및 관련 배상 등이 향후 속도를 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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