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는 ‘이주의 시대’라 불릴 만큼, 국경을 넘는 이동이 일상화된 시대로 시작하였다. 국경의 장벽이 낮아지고, 전 세계 어디에서든 일하고 거주할 수 있는 자유로운 이동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기대가 확산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대규모 난민 유입과 빈곤 탈출을 위한 이주자의 증가에 대한 불안 역시 고조되었다. 이러한 상반된 전망 속에서, COVID-19 팬데믹은 인류의 이동성에 중대한 제약을 가하며 ‘이주의 지구화’에 급제동을 걸었다. 국경은 다시 단단히 닫혔고, 여권의 효력은 사실상 정지되었으며, 국적과 시민권은 국가의 진입을 가능하게 하는 거의 유일한 자격이었다. 국민국가의 위상은 오히려 강화되었고, 시민권은 더 이상 상징에 그치지 않고 삶의 경계를 결정짓는 실질적 권력으로 작동하게 되었다.
팬데믹이 종식된 이후 세계는 다시 이동을 재개하였으나, 그 양상은 이전과 같지 않다. 세계화의 흐름은 약화되었고, 보호무역주의가 본격적으로 부상하였으며,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는 이주자에 대한 규제와 배제가 강화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 변화에도 불구하고, 국제이주는 사라지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국제이주는 끊임없이 반복되어 왔으며, 글로벌 불균형의 심화, 기술 발전, 그리고 통신 인프라의 확산 등을 통해 향후 국제이주의 증가가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이주자가 새로운 사회에서 직면하는 삶의 조건 또한 변화하고 있다. 그들은 제도적 장벽과 시민적 배제, 사회적 차별과 경제적 불평등 속에서 지속적으로 ‘타자화’되어 왔다. 자민족 중심주의의 재부상, 권력의 비대칭, 사회적 편견과 낙인은 이주자의 일상을 여전히 고립시키고 배제하는 요인으로 작동한다. 그런데 최근 국제질서의 불안정성은 이러한 이주자 문제의 해결을 한층 더 복잡하고 어려운 과제로 만들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국제이주와 시민권, 그리고 이로부터 파생되는 사회적 경계, 차별, 권력, 인정의 문제를 통합적으로 고찰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출발하였다. 이주는 이제 특정 계층이나 국가에 국한된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라 글로벌 자본주의, 기술의 진보, 그리고 국가 전략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발생하며, 다양한 정치·사회적 쟁점을 야기하고 있다. 이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의 조건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우리 사회가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이 책의 전반부(1~7장)에서는 국제이주와 시민권, 그리고 복수국적 정책을 중심으로 이주의 조건과 구조를 살펴보았다. 시민권의 ‘가격’이라는 문제의식 아래, 국가가 어떻게 이주를 전략적으로 조건화하고 선별적으로 수용하는지를 분석하였다. 특히 한국 사회를 중심으로 복수국적 제도가 어떤 방식으로 이주자를 포섭하거나 배제하는 수단으로 작동하는지를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중반부(8~22장)에서는 이주자에 대한 사회적 시선, 편견과 차별의 구조와 기제를 분석하였다. 인종과 민족의 구별짓기를 통해 형성되는 편견은 이주자를 낯선 존재, 나아가 위험한 존재로 구성하며, 정서적 반감과 제도적 차별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상징권력에 의한 상징적 폭력으로 이주자에게 차별이 부과되는 방식에 대해 고찰하였다. 그리고 ‘범죄자’, ‘위험 요소’라는 프레임이 이주자의 타자화를 심화시키며, 사회적 배제를 제도화하는 것에 대해서도 논의하였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이주자들이 실제로 겪는 사회적 불안과 공포, 그리고 정당한 보호의 결여 문제를 실증적 사례와 함께 분석해 보았다.
후반부(23~27장)에서는 다문화주의와 다원주의, 인정의 정치학, 환대의 개념을 통해 평등한 공존의 가능성을 모색하였다. 또한 최근 주목받고 있는 ‘부유한 이주자’ 현상에 주목하며, 자본을 매개로 한 선택적 환대, 계급적 이동의 재구성, 그리고 이들이 경험하는 재영토화 된 삶의 조건에 대해 탐색하였다. 이들은 기존의 타자성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회에 편입되며, 계급과 이주의 문제를 교차적으로 사고하게 만든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국경을 넘어온 이주자에 대한 편견, 차별, 낙인은 어느 사회이든 존재한다. 그러나 사회가 외국인 이주자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사회구성원과 이주자의 관계도 달라진다. 탄압과 억압에서부터 통합, 또는 상호 인정을 바탕으로 공존을 모색하는 방식까지, 사회의 대응은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인종주의와 민족주의가 지배하게 될 경우 지배집단과 이주자 집단 모두 막대한 경제적, 사회적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이러한 차별적 구조를 만들어가는 데 있어 더 큰 책임은 소수자인 이주자가 아니라, 사회를 통제하고 지배하는 다수자와 기득권 집단에 있다. 결국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이들 다수집단이 외국인 이주자에 대해 관용과 수용의 태도를 갖지 않고서는 결코 찾아질 수 없다.
외국인 이주자들은 단순히 국경을 넘어 들어오는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각기 고유한 문화, 관습, 행동양식 등 자신들의 아비투스(habitus)를 지닌 채 새로운 사회적 장(field)으로 진입한다. 문제는 한국 사회가 이러한 문화적 이질성을 어떻게 수용하고 조율할 수 있는가에 있다. 토착 시민인 다수집단은 지배적 지위에 놓이며, 이주자는 ‘타자’ 혹은 ‘이방인’으로 위치 지워진다. 이러한 권력의 비대칭적 관계 속에서 다수집단이 이주자에게 일방적인 동화를 요구하게 되면, 이는 곧 편견과 차별을 낳고, 나아가 사회 전반에 갈등과 긴장을 초래할 수 있다.
이 책을 통하여 나는 이주와 이주자에 대한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살펴보는 동시에 우리 사회에서 이주자와 다수집단 구성원과의 상호 인정과 통합을 토대로 공존과 사회의 안정과 발전을 모색해 보고자 하였다. 한국 사회가 이주자들이 가지고 들어오는 문화적 이질성을 어떻게 수용하고 조율하는지가 우리에게 주어진 중요한 과제임은 틀림없다. 이주자의 존재를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하며, 상호 인정을 바탕으로 공존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은 다수집단 구성원들의 책임이자 몫이다. 이러한 과제에 대해 하나의 정답을 제시하려는 시도보다 국제이주라는 복합적 현상을 다양한 층위에서 고찰하고 토론할 필요가 있다. 이주자와 관련한 사회학적 이론과 현실의 교차점에서, ‘타자’로 규정된 이방인에 대한 기존의 통념을 넘어서,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조건에 대해 보다 윤리적이고 현실적인 고민을 책을 통해 독자들과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