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7일 유로뉴스(Euronews)에 따르면, 불어 수호 단체 아카데미 프랑세즈(Académie Française)가 지난 해 도입된 개정 신분증의 불어와 영어 이중 표기를 두고 불만을 나타냈으며 정부에 개정 신분증의 폐지를 공식적으로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프랑스에서 사용하는 신분증에는 소지자의 성과 이름, 성별, 국적, 생년월일, 출생지역, 애칭, 신분증 번호, 신분증 만료일이 각각의 세부 항목으로 표기되어 있다.
유럽연합은 모든 회원국에서 사용하는 신분증에 자국어를 포함하여 최소 1개 이상의 유럽연합 회원국 언어로 ‘신분증’이라고 표기할 것을 법으로 제정해 강제하고 있다. 신분증에 기재되는 세부 항목에 대한 외국어 표기는 연합법률의 강제 없이 회원국 정부의 선택에 따르도록 되어 있는데, 프랑스 정부가 지난 해 도입한 개정 신분증에는 세부 항목의 불문 표기의 오른쪽에 작은 크기로 영어 번역문 표기가 추가됐다.
프랑스는 유럽연합 회원국으로, 연합 회원국 간 국민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 받고 있으며 유럽연합의 법에 따라, 프랑스 국민이 타 회원국에 입국 또는 체류 시 신분증으로 여권 또는 체류증을 대체하여 사용할 수 있다. 신분증에 영어 번역문이 표기됨에 따라, 불어를 사용하지 않는 유럽연합 회원국에서 프랑스 국민의 신원 확인 절차가 수월해지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약 400년의 역사를 가진 순정 프랑스어 수호 단체 아카데미 프랑세즈가 불어와 영어로 이중 표기된 개정 신분증이 헌법 제2조에 위배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헌법 제2조는 국가의 언어가 불어임을 명시하고 있는데, 이를 근거로 불어와 영어를 병기한 개정 신분증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아카데미 프랑세즈는 지난 금요일 변호사를 통해 장 카스텍스(Jean Castex) 국무총리에게 개정 신분증의 폐지를 요구하는 전언을 전달했음을 공식 발표했다. 카스텍스 국무총리가 응답하지 않으면 최고행정법원에 법률 심사를 요청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출처: 르 피가로 Le Figaro)
공화당 상원 의원 브루노 레타이요(Bruno Retailleau)는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입장을 지지했다. 레타이요는 트위터를 통해 새 신분증에서는 프랑스의 정체성을 찾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며, 영문 표기에 대해 프랑스의 “민족적 긍지와 단결력을 없애려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출처: 브루노 레타이요 트위터) 극우파 정당 국민전선의 대선 후보 마린 르 펜(Marine Le Pen)도 비슷한 입장을 표명했다. 르 펜은 트위터를 통해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행보가 “지속적인 영어의 침투에 대항하여 우리의 언어를 수호”하는 것이라고 표현하며 감사를 표현했다. (출처: 마린 르 펜 트위터) 반면 작가이자 음악가인 에티엔 리비히는 이같은 주장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 신분증에 불어와 함께 영어가 표기된 것만으로 국가의 정체성이 흔들릴까 두려워하는 것이 터무니없다는 것이다.
프랑스는 자국어에 대한 긍지가 높은 나라로 익히 알려져 있다. 국제적으로 정치와 외교에 사용되는 용어 중 불어에 그 기원을 둔 용어가 적지 않으며, 영어 다음으로 중요한 외교 언어로 인식이 높다. 많은 국가에서 불어를 공식 언어 또는 공용어로 지정하고 있으며, 그보다 더 많은 국가에서 제2, 제3외국어로 가르친다. 불어가 이처럼 널리 사용되며 그 영향력을 입증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내에서는 불어의 입지가 위협받고 있다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특히, 타 외국에 비해 영어에 대한 반감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미국 대중 매체의 인기에 기반하여 영어 표현의 일상 사용 빈도와 영어 기반 외래어 표현 생성 빈도가 높기 때문이다. 이에 프랑스 정부가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주장에 어떻게 대응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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