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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5] 2026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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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땅에 새겨진 기억: 제주 4·3 현장답사

이정현 (계명대학교 언론영상학과 조교수)

국제학연구소는 인문사회연구소지원사업 1단계 2차년도 수시과제의 일환으로 제주4·3의 주요 유적지와 기념공간을 답사하였다. 이번 일정은 4·3 당시 주민들이 피신했던 동굴과 사라진 마을, 집단 희생지와 수용소, 그리고 오늘날의 추모·교육 공간을 차례로 방문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사흘간의 답사는 제주4·3이 하나의 사건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제주의 마을과 해안, 동굴과 건물 곳곳에 서로 다른 형태의 기억으로 남아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첫째 날에는 목시물굴과 다랑쉬마을·다랑쉬굴, 성산 터진목을 찾았다. 이들 장소는 주민들의 피신과 마을의 소실, 집단희생으로 이어진 4·3의 참상을 직접 보여주는 현장이다. 다랑쉬마을은 4·3 당시 불타 사라진 ‘잃어버린 마을’이며, 인근 다랑쉬굴은 하도리와 종달리 주민 11명이 피신했다가 토벌대가 피운 불의 연기에 질식해 희생된 장소이다. 특히 1992년 굴 내부에서 유해가 발견되면서 다랑쉬굴은 오랜 침묵을 깨고 4·3의 진실을 사회에 알리는 상징적 현장이 되었다. 성산일출봉이 바라보이는 터진목 역시 성산과 구좌 지역 주민들이 끌려와 희생된 학살터이다. 무더운 날씨에 아름다운 제주의 풍경과 그 안에 감춰진 비극의 역사가 극명하게 교차하는 장소였다.

둘째 날에는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 민주시민문화교육과를 먼저 방문하여 제주도 학생들에게 이루어지고 있는 4·3 관련 교육에 대해 배웠다. 이어서 너븐숭이4·3기념관, 곤을동4·3유적지, 주정공장수용소 4·3역사관을 답사하였다. 이날의 일정은 개별적인 희생의 현장이 오늘날 어떻게 기록되고 교육되는지를 함께 살펴보는 과정이었다. 너븐숭이는 1949년 1월 17일 북촌리 주민 수백 명이 희생된 북촌학살의 기억을 간직한 곳이다. 기념관과 위령비, 애기무덤 등은 희생의 규모뿐 아니라 그 안에 존재했던 한 사람의 삶, 이후 생존자와 남은 가족들의 삶의 무게를 생각하게 했다. 곤을동은 1949년 1월 토벌대에 의해 가옥이 불타고 주민들이 희생된 뒤 아직 복구되지 못한 마을이다. 집터와 돌담만 남은 공간은 한 편 아름다우면서도 스산함을 간직한 채 지난 역사를 말없이 증언하고 있었다.

 

주정공장수용소 4·3역사관에서는 4·3 당시 연행과 구금이 이루어진 과정을 살펴보았다.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주정공장의 창고는 4·3 당시 주민들을 수용하고 취조하는 공간으로 사용되었으며, 이곳에 갇힌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재판을 거쳐 육지 형무소로 이송되었다. 동굴과 마을터가 피신과 학살의 현장이라면, 주정공장수용소는 제도적 절차가 작동하던 방식을 보여주는 장소였다.

셋째 날에는 제주4·3평화공원과 제주4·3평화기념관을 둘러보고 제주4·3평화재단의 특강에 참여하였다. 앞선 이틀 동안 마주한 기억이 동굴과 폐허, 학살터에 흩어져 있었다면, 평화공원과 기념관은 그 기억을 한데 모아 추모하고 기록하는 공적 공간이었다. 평화기념관의 전시는 4·3의 배경과 전개, 피해, 진상규명운동의 과정을 연결하여 보여준다. 공원에 마련된 위령제단과 위령탑, 희생자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새겨진 공간에서는 오랫동안 제대로 불리지 못했던 이름들을 공동체의 기억으로 되돌려놓는 일이 지닌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다. 이어진 특강에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어느 정도 진행된 4·3은 남은 ‘숙제’는 없지만 앞으로 어떻게 ‘평화’의 이야기로 나아갈지에 대한 고민이 남았다는 이야기는 깊이 남았다.

제주4·3은 제주 곳곳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아름다운 제주 곳곳에 정성스럽게 지은 4·3기념관과 살뜰히 보살피고 있는 4·3 유적지를 오갔던 경험은 시간 속에 묻혀 있던 사람들의 삶과 장소를 다시 연결하고, 그 기억을 오늘의 평화와 인권을 위한 질문으로 이어가는 일이었다. 이번 답사는 제주의 땅에 남은 흔적을 직접 걸으며 기억의 의미와 그것을 잊지않고 끊임없이 다시 이야기하는 우리의 책임을 되새긴 뜻깊은 시간이었다.